Chapter 208

외전 9화


“이왕이면, 상대가 원하는 선물이면 좋잖아요?”

수화기 너머 지영의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네, 선물은 이걸로 하죠. 아, 그리고 선물은 그 수정이라는 분 연락처 넘겨주시면 그때 보내드리죠.”
  “네, 물론이죠. 그럼, 이만 끊을게요.”

전화가 끊어진 후, 구양모와 나는 서로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 서로를 향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거다!’

* * *

사흘 뒤, 서지영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리는 임수지라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임수지 씨 되시나요?”
  “네, 누구시죠?”
  “아, 저는 너튜브에서 활동하는 구양모 기자라고 하는데요, 서지영 씨 아시죠? 예전에 JNC 엔터에서 같이 연습생으로 있었다고 들었는데….”

순간,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저,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저한테 시간 좀 내 주실 수 없으실까요? 저는 수지 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죄송합니다. 저는 드릴 말씀 없습니다.”

구양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수지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도 구양모는 임수지에게 몇 번이나 전화와 문자를 보냈지만, 결국 임수지에게서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 * *

“임수지 씨 입장에서는 다시는 꺼내고 싶진 않은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럴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늦은 밤, 구양모의 작업실에서 나는 구양모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렇기는 한데….”

인정하는 말과 달리 구양모의 얼굴에는 내심 아쉬운 표정이 묻어났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가시죠. 우리가 계획한 게 제대로 타지면, 임수지 씨가 스스로 입을 여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요.”

구양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어요.”

백인아와 JNC 엔터의 계약 완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뭐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바로 준비 시작하시죠.”

준비에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구양모의 작업실 안팎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은 내가 따로 아는 보안 업체를 통해 조용히 진행했다.

작업실 안에만 다섯 군데, 건물 입구와 옥상, 골목 초입에 각각 한 대씩, 화질은 야간에도 선명하게 잡히는 것으로 골랐다.

“이거 완전 첩보영화 같네.”

설치가 끝난 작업실을 둘러보던 구양모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냥 카메라예요. 자연스럽게 행동하세요.”
  “쳇, 말이 쉽지.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 24시간 보안 업체가 카메라로 보고 있을 텐데? 방귀나 편하게 뀌겠어?”

나는 엄살을 부리는 구양모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저도 당분간 퇴근하면 근처에 있을게요.”

방송 날짜는 구양모가 정했다.

구양모는 매주 목요일 밤 열 시에 정규 방송을 내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에는 긴급 방송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화요일 오후 7시에 게릴라 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신 하루 전에 예고를 요란하게 달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뭔가 구양모가 엄청난 특종을 잡기라도 한 것처럼,

“썸네일은 어떻게 할까?”
  “최대한 자극적이게요. 누구라도 혹하고 들어와서 볼 수 있게.”

구양모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최대한 자극적이게? 오케이. 그런 거라면 또 내 특기지.”

* * *

방송 당일, 나는 평소처럼 오전 일정을 처리했다.
  회의가 두 건 있었고, 오후에는 한신 미디어 영상사업팀과 잠깐 미팅이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 머릿속으로 오늘 밤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방송이 올라가고 난 후, 차현우 대표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퇴근 무렵, 구양모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송 준비는요?”
  - 이미 끝났지. 방송 잘 봐. 알았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말투였지만, 구양모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네. 그리고 오늘 방송이 차현우 대표한테 전달되기 전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밤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고요.”
  - 나 긴장한 거 티나? 나 지금 떨고 있니? 하하.
  “뭐, 아직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걸로 봐서는 아직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요.”

그렇게 구양모와 통화를 끝낸 나는 서둘러 퇴근했다.
  그리고 구양모의 작업실과 멀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말로는 오늘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혹시나 몰라 나는 구양모의 작업실 인근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나는 가지고 온 노트북을 꺼내 구양모의 작업실에 설치한 카메라 화면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화면 속 작업실에서는 구양모가 조명을 조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블루 배경지 앞에 앉아 카메라 앵글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구양모의 모습이 보였다.

7시 정각. 나는 핸드폰으로 구양모의 너튜브 라이브 방송에 접속했다.
  전날 요란한 예고 때문이었을까, 동시 접속자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제가 어제 예고했다시피 오늘은 저 구양모가 여러분에게 핵폭탄급 이야기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이 바로 터졌다.

↳ 크크크크 핵폭탄급이라고?
  ↳ 어제 예고 보고 기다렸는데, 별거 아니면, 구독 취소할 거다.
  ↳뭔데? 뭔데?!! 현기증 나니까 빨리 말해!!!

나는 핸드폰 화면을 방송창에 고정한 채, 등받이에 기대었다.

구양모의 말투는 평소와 달리 흥분으로 들떴다.
  사람들의 동요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나름의 작전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JNC 엔터테인먼트. 아마, 모른 분들보다는 아시는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소속 배우 스물세 명, 설립 12년 차 중견 매니지먼트사.”

잠시 뜸을 들이던 구양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 최대 주주는 JNC 엔터의 대표인 강진태가 아닙니다.”

구양모의 말에 댓글 창이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 대표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최대주주? 누군데?!!
  ↳ 오~ 뭔가 나오는 건가요? ㅎㅎㅎ

“바로 해성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법인이 JNC 엔터 지분의 45%를 보유한 실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해성 인베스트먼트, 홈페이지도 없고, 투자 이력이라고는 JNC 엔터 단 한 건뿐이에요. 주소는 공유 오피스. 출근하는 사람도 없고, 실질적인 사업 활동도 없는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구양모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 헐, 대박!
  ↳ 그럼, 그 뒤에 누가 있는 거야? 설마, 조폭?!
  ↳ 야쿠자?! 삼합회?!!

댓글창의 반응에도 구양모는 꿋꿋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이 해성 인베스트먼트에 흘러 들어간 자금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름 하나를 찾았습니다. 바로 CV 로엔 파트너스. 그리고 그곳의 대표인 차현우 대표.”

또다시 댓글창이 폭발했다.

↳ 헐, 이건 예상 못 함. 조폭이 아니라 로펌이라니!
  ↳ 차현우? 처음 듣는 이름인데?
  ↳ 잠깐, 나 이 이름 들어봤어. 이 사람 검사였었는데.
  ↳ 뭐야? 검사가 왜 연예 기획사를?
  ↳ 지금은 검사 그만뒀음. 방금 로펌 대표라고 했잖아. ㅂㅅ ㅋㅋㅋㅋ.
  ↳ 오~ 구양모 기자, 드디어 큰 거 터트리나요?!

구양모는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차현우가 검사 시절 수사를 통해 수집해 온 약점 자료들.
  CV 로엔 파트너스 로펌을 설립하고 해성 인베스트먼트를 만들어 JNC 엔터에 투자한 경위.

그리고 JNC 엔터를 통해 소속 배우들을 정·재계 인사들의 로비 자리에 동원했다는 정황.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다시 약점을 수집하고, 원하는 수사는 막고, 원하는 인물은 수사 대상에 올리는 방식으로 법조계와 정계를 장악해 온 구조까지.

구양모는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차분하면서도 정확하게 짚어나갔다.

댓글창은 이미 감당이 안 되는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들을 천천히 쥐었다.

‘하, 사람들이 예상대로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 말미. 구양모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현재 이 모든 사안에 관한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해 둔 상태입니다.”

댓글창이 순간 조용해지는 듯하다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 헐, 대박! ↳ 물증이 있다고?!
  ↳ 구양모는 당장 물증을 공개하라!
  ↳ 이거 물증 있는 거 사실이면, 진짜 대박인데.

“지금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니, 다음 주 정규 방송 시간에 채널을 통해 해당 증거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구양모가 방송을 끝냈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노트북 화면으로 구양모의 모습이 보였다.

구양모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고는 천정을 향해 긴 한숨을 내뿜었다.
  나는 그런 구양모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구양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송 잘 봤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 나 방금 다리에 힘이 풀렸어. 진짜로.
  “네, 그러실 것 같아요.”
  - 지금 조회수 봤어? 30분도 안 됐는데, 50만이야. 50만.

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어느새 각종 커뮤니티에 방송 클립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 이제, 기다리면 되는 거지?
  “네, 오늘 밤은 절대 혼자 밖에 나가지 마세요.”
  - 알았어. 근데, 민 부사장이 말한 것처럼 당장 오늘 밤에 뭔가 오진 않겠지?
  “네. 그래도 모르니까, 조심하시고요.”
  - 그래. 어, 잠깐만, 지금 전화 들어온다. 예전에 알던 기자야. 언론 쪽에서도 바로 반응 오는 것 같은데? “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나는 또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화면 속 구양모를 봤다.

‘오늘은… 별일 없겠지.’

* * *

다음 날 아침, 강남에 위치한 CV 로엔 파트너스 차현우 대표의 사무실.

차현우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구양모 기자의 방송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트너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증이… 진짜 있을까요?”

차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파트너 변호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쪽에서 확보했다는 게 자금 흐름 쪽이라면, 우리가 설계한 구조상 쉽게 뚫리지는 않을 텐데….”
  “박 변호사님.”

차현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파트너 변호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차현우가 그런 파트너 변호사를 향해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있으면 없애면 되고, 없으면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되니까요.”

차현우의 말에 파트너 변화가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은 듯 “아…”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파트너 변호사에게서 시선을 돌린 차현우가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황 실장님. 저, 차현웁니다. 황 실장님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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